Sunday, April 1, 2012

건축학개론 - 살면서 몇 번 쓸 일 없는 영화평 #1




** 한국어 포스팅입니다. 스크롤을 살짝 내려주세요 :)

Whenever I write, I try to bridge the gap between culture - one of the main reasons why I publish my posts in both English and Korean. This case, however, entails nostalgia from the 90s. That's the world before twitter and facebook. Not everyone was on the same page. I believe that recognizing the different age/cultural cohorts as they are is another way to respect their uniqueness. So this posting will be written in Korean only. In future, if someone talented enough comes up with quality translation to penetrate same feelings to non-Korean speakers who lived the 90s differently - then I'm more than happy to share how s/he will have felt.


0. PREFACE: 영화관 참 안 가는 여자.

아는 사람은 안다. 왜 이 글 부제가 "살면서 몇 번 쓸 일 없는 영화평"인지.

난 영화관에 자주 가지 않는다. 
가서도 내 돈 주고 영화 보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
그렇다고 개봉 끝날 때까지 기다려서 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영화 자체를 잘 안 본다고 해야하나..

오죽하면 내가 일년에 가장 영화를 많이 보는 곳은 10,000m 상공 위 비행기 안이겠는가..;

2012년 4월 1일.
봄날씨라 하기엔 약간 서늘하지만 햇살이 참 좋은 일요일.
딱히 올해의 농담으로 기억할만큼 재밌는건 없는 지루한 오후.

영화관 참 갈 일 없는 그 여자가 
아이스커피의 얼음을 아작아작 씹으며 앉아서 일을 하다가 
무심코 한 자락의 생각이 스치자

"건축학개론" 예매를 했다.


1. INTRO: 꼭 혼자 봐야만 하는 이유.

중학교 때 유행했던 괴담이 있었다.

밤 열두시에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고, 식칼을 입에 문 채로 혼자 화장실에 가서 
세면대에 수돗물을 받아 놓은 뒤 거울을 보면 미래의 남편 얼굴이 보인다는, 뭐 그런 류의 괴담이었다.

모든 괴담이 그렇듯이,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던 친구가 말하길-
"내 친구의 친구는" 거울이 뿌얘졌다가 갑자기 차츰 사람 얼굴이 보이자 놀라서 입에 물고 있던 식칼을 세면대 안에 떨어뜨렸는데, 갑자기 물이 빨갛게 번졌다나..

그 때 한 네 명 정도가 그 얘기를 다 듣고 있었는데
말도 안된다고, 그런걸 믿냐며 얘기를 해준 친구를 아주 심하게 핀잔을 준 기억이 있다.

나중에 5년 정도 지나 대학교 때 알게 된 웃지 못할 사연은,
나를 포함한 그 네 명 전원이 소복을 구할 곳이 없어 결국 시도를 포기했다는 얘기였다.


나에게 이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그랬다.

"이 영화를 보면, 첫사랑이든 아니든, 누군가 한 명은 꼭 생각난다더라."

그런게 어디있어, 하면서도
열두시에 몰래 머리풀고 소복입고 식칼물고 혼자 화장실로 가는
여중생의 마음으로 보게 된 영화다.
그래서 혼자 보기로 했다.
아니, 혼자 봐야만 했다. 
행여나 영화 끝나고 표정관리 못하면 쪽팔리니까.

나는 나를 스쳐 지나간 사람들 중 누구를 기억할것인가.


2. BODY: 당신의 기억에 심하게 기인하는 영화.

워낙 화제가 많이 된 영화이고, 시놉시스에도 기본적인 세팅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등장인물에 완전 이입되어 볼 수는 없다는건 알고 들어갔다.

내 첫키스는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매우 지우고 싶은 기억이며
내 첫사랑은 영화에서 나오는 수채화톤의 설렘과 떨림보다는 
원색의 페인트가 난무하는(...) 뭐 그런 종류였기 때문에.

지금도 지인들이나 직장동료들에게 기가 센 Free Soul(-__-)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여기서 미친 체력 추가하고 감정브레이크 조절 안되고 성격이 불같았던 10대 후반..정도로 상상하시면 되시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중간중간 빵빵 터지는 유머코드가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고,
추억의 오브제들이 나오기 때문에 낯설지 않다.
배우들의 연기도 안정적이다. 특히 이제훈 - 왜 이 영화가 "이제훈의 영화"라 평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여자인 내가 봐도 한가인, 배수지 라인업은 최고. 
알아서 안구정화는 기본이고.
가끔 여자 배우들 중 보고 있으면 지나치게 눈부시게 예쁘다고 해야되나, 그래서 피곤해지는 얼굴이 있는데..
전체적인 시나리오에 적절히 녹아들어가는 딱 맞는 美..라고 하면 맞을 듯 싶다.

그렇다고 멜로 부분에서 전혀 동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이 영화가 히트를 친 이유는, 이미 알려진대로 자기 자신의 기억에 심하게 기인하는 영화기 때문이다.
나도 몇몇 극적인 장면들에서는 움찔움찔하고, 당시 생각이 났었다.
그런데 그 사람 기억이 쭉 가지는 않더라. 

반대로, 극장에서 내 왼편에 앉아있던 남자는
여친이 애교를 부리며 "아아~ 오빠 이 영화 역시 소문대로 재밌다. 이제 가자!"라고 하는데도
엔딩 크레딧 다 올라가고 극장 불이 환히 켜질때까지 돌처럼 앉아있었다.
(이분은 결국 여친의 "...오빠 누구 생각해." 라는 말과 함께 질질 끌려나갔다.)
  
뭐, 내 지인 옆자리에 앉은 어떤 남자분은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니..


그리고 "건축학개론"을 말할 때 역시나 많은 사람이 이야기 했던 점 하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 술이 땡긴다. 남자는 특히."라는 말인데..

이건 사견이지만, 정말 술먹는 씬을 아주 오묘하리만치 적절하게 잘 표현해서 넣었다.
너무나 뻔한 전개고, 대사의 흐름도 알 수 있지만,
뭔가 오감을 자극하는 음주씬(...)이라고 표현하면 이상하려나.

주위 전경. 한잔 들이키고 내뱉는 자연스런 반응. 앞에 앉아있는 사람..
마치 "영화 끝나고 술 한잔 하셔"라고 최면 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3. CLOSE: 난 누구를 보았는가.

이 글을 쓰기 전에 내 facebook newsfeed를 확인해보니
오늘 - 2012년 4월 1일 - 건축학개론을 봤다는 사람만 나 포함 열두명.
조만간 봐야겠다고 쓴 사람이 다섯명. 

결국, 
내가 마음이 동하여 쓴, 나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이 글도 
당신의 타임라인 한 칸을 채우는 수많은 "건축학개론"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건축학개론"은 그런 면에서 비슷하다.

예상한대로 흘러갔고, 기대한 장면들이 나왔으며, 웰메이드 한국 멜로물이다.
하지만 영화관 어둠속에 앉아 각자가 "보았던" 사람들은 모두 특별하고 다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누구나 잠깐이라도 동요하지 않았을까.

아, 그리고 그닥 궁금하진 않겠지만..

내가 기억한 사람은 결국 내가 지금 마음속에 담고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이었다.



APPENDIX: 약간 덜 심각한 이야기.

#1. 

내가 간 영화관은 중앙자리가 13석이어서 커플들이 와서 앉으면 꼭 한 자리가 남게 되어 있는데,
정말 스크린이 정중앙인 울트라 로얄석[!!!]에서 커플들 사이에 끼어 아주 쾌적하게 영화를 감상했다.

왼편에는 커플 중 남자가, 오른편에는 커플 중 여자가 앉았는데..
왼편에 계시던 남자분 이야기는 위에서 했고,
오른편에 앉은 여자는 본인 목소리가 상당히 작다고 믿으신듯 하다.

"어머 쟈기 옆에 있는 사람 이 영화 혼자 보러왔나봐아. 
뭐 액션은 그렇다 쳐도.. 이런 연애 영화를 여자가 혼자보러왔어~ 세상에 희한한 사람 많다 그치?"


#2. 

아까 그 수군수군 그녀. 
중간에 이제훈과 배수지가 걷는 장면이 나오자 
"어머어머 오빠 저거봐봐봐 저 남자보다 배수지 얼굴이 더 커. 
진짜 평범하게 생겼는데 쟤 왜 뜨는지 모르겠어 그치그치?" 

....거울 좀 보고와서 다시 얘기해봐라. 


#3.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읽은 최고의 감상평은 한 줄짜리였다. 

"우리는 한 때 누군가의 썅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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